김남기는 자기 색깔이 뚜렷한 지도자다. 연대 재임시절에도 그랬고 대표팀 전임 감독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언제나 '대세'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농구철학을 소신있게 밀어붙여왔다. 많은 농구팬들이 그의 대표팀 중도하차를 아쉽게 생각한 것도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구계 안팍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대표팀을 개혁할 수 있을만한 인물로는 김남기가 최적이었기 때문이다. 뭐, 아무리 아쉬워해봤자 버스는 이미 떠났고 대신 우리는 '김남기식 농구'를 프로무대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이면계약 파동으로 막장쇼의 진수를 선보인 오리온스를 지켜봐야 할 단 하나의 이유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오리온스 부임 과정에서부터 일부 팬들에게 대표팀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돈을 선택했다는 비난에 시달렸던 김남기 감독은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도 예상외의 지명으로 다시 한 번 논란을 일으켰다. 많은 아마농구 지도자들이 프로 데뷔 직후 팀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 위해 안정보다는 변화, 개혁을 시도하는데, 김남기 감독 역시 외국인 선수 선발과정에서부터 기존 KBL의 성공방정식 대신 자신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선수인 허버트 힐을 선발한 것이다.
물론 불꽃앤써님을 비롯한 76ers 팬들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 허버트 힐은 불과 2시즌 전 까지만 해도 NBA 리거였던 선수로 대학시절엔 BE 컨퍼런스에서도 제법 주가가 높았던 선수였다. 드래프트 직후 대학농구 광팬인 한 지인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허버트 힐이나 션 윌리엄스나 도찐개찐이었다며 잘 키우면 나름 쏠쏠한 활약을 펼칠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인해 재활만 하다 결국 NBA에서 퇴출당했지만 기본적으로 재능있는 선수였다는 이야기이고, KBL 트라이아웃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김남기 감독의 마음을 흔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오리온스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 열리기도 전에 김승현의 이면계약 파동이라는 엄청난 홍역을 치른 상황이었지만 본 포스트의 주제와는 상관없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그 대신 이 문제로 인해 가려진 몇몇 선수영입에 집중하고자 한다. 외국인선수 선발에 앞서 이루어졌던 FA영입과 두 건의 트레이드야말로 김남기 감독이 던진 승부수였기 때문이다.
오리온스 부임 이후 김감독의 레이더에 포착된 첫 번째 선수는 바로 FA로 풀린 정훈이었다. 정훈은 3년간 연봉 7100만원에 계약을 체결했는데, 영입이 확정된 후 김남기 감독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알게만 된다면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정훈을 평가했다. 어느새 서른줄에 접어들어 더이상 발전을 논하기엔 어려운 나이가 됐지만 김감독은 여전히 정훈이 좋은 선수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곧이어 오리온스와 세이커스 간의 2대2 트레이드가 이루어졌는데, 오리온스는 이현준과 백인선을 보냈고 LG에서 석명준과 박광재를 받아왔다. 인지도 측면에서는 올스타전 덩크 챔피언 출신인 석명준이 앞서있지만, 이 트레이드는 연대 재임시절 아끼는 제자였던 박광재를 데려오기 위한 트레이드로 보는 것이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박광재는 김남기식 10인 로테이션에 익숙해 짧은 출장시간에도 제 몫을 해줄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김남기 감독의 '색깔 입히기'는 전자랜드와의 1대1 트레이드로 화룡점정을 찍었다. 이상수를 보내고 최승태를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킨 것이다. 대표적인 장신가드 유망주 중 한 명이었던 최승태는 김남기 감독 밑에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보냈으나 프로 무대 적응 실패와 거듭된 부상으로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 모습을 드러내며 재기에 성공했고 아직 젊은 선수인 만큼 성장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물론, 고질적인 부상 악령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전제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오리온스는 정훈(200)-석명준(193)-최승태(189)-박광재(198)를 영입함으로써 팀 장신화에 성공했다. 대체 불가능 자원인 김승현과 주축 백업 가드인 정재홍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들이 185 이상인데다 포워드 평균신장은 190 중반에 육박한다. 로스터에 남은 기존 선수들도 모두 큰 키와 기동력을 겸비한 선수들로 김남기 스타일에 딱 맞는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오리온스엔 하승진도 서장훈도 김주성도 없다. 김남기 감독은 강력한 정통빅맨을 보유하지 못한 팀 전력을 감안해 전 포지션의 장신화와 기동력을 해결책으로 제시했으며, 이것이 바로 김남기 감독이 줄기차게 고수해온 지도철학이기도 하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풀 타임 프레스 디펜스 & 패스트 브레이크를 주 전술로 삼아 토털 바스켓을 추구할 계획인 것이다.
문제는 과연 이런 김남기의 도전이 프로무대에서 어디까지 통할 수 있겠느냐는 점이다. KBL은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모든 팀들이 외국인선수 중심으로 전술을 수립한다. 그러나 김남기식 농구는 특정선수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로스터 내의 모든 선수들을 활용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근본적인 발상부터 '대세'에 역행하는 셈이다. 물론 체계적인 훈련으로 조직력을 끌어올린다면 수비 전술의 달인이자 원 포제션 게임의 귀재인 김남기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반대로 외국인 선수의 능력을 제한하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팀내 최고 선수인 김승현의 역할 역시 축소될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막연하게 김남기의 선택이 옳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뿐만 아니라 팀의 주축 선수들이 부상이 잦은 편이고, KBL 전체 경기수가 54경기에 달하는 장기레이스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반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팀들도 시즌 종료를 앞두고 선수들의 체력저하와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데, 코트 위에서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하는 김남기식 농구의 체력적인 부담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김남기 감독의 도전은 무모한 것처럼 보인다. 김승현 없이 18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부담, 처음으로 지도하는 외국인 선수, 기존 선수들과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호흡 문제 등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라 할지라도 김남기 감독은 늘 앞만 보고 결코 멈추지 않는 지도자였다. 오리온스에서의 도전이 아집이나 독선으로 기억될 수도 있겠지만, 그의 도전이 또 한 번 한국농구에 바람을 일으킬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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